2009년 08월 09일
寬, 너그러움의 가치와 내 이름에 대해 -
寬
너그러울 관
내 이름 '우관' 중 관은 이런 뜻을 갖고 있다.
지금껏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물며 군대에 입대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도
이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에 대해 후회도 없었고 자신에 대한 실망 같은 것도 전혀 없이 아주아주 맘 편하게 살아왔지만(그래서 굉장히 이기적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오늘 나는 이름에 걸맞는 행동을 했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너그러운 행동을 안해본 것이야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 놀랄 정도의 너그러움을 발휘했다. 그것은 사소한 일이었지만 지금까지의 내가 내렸을 결정과 완전히 상반되는 놀라운 결정이었다.
일요일 주말 저녁,개인정비시간에 다들 운동하거나 싸지방에 가거나 알아서 놀고 있는 사이 나는 마침 생활관에 혼자였기에 TV를 보고 있었다.
마침 영화 딥임팩트가 하고 있었고 나는 재밌게 보고 있었다.
근데 선임 한명이 들어와서 말도 없이 리모콘으로, 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맘대로 채널을 돌려 자신이 보는 채널을 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어이가 없기에 선임에게 말했다.
'지금 제가 먼저 보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 선임이 말했다.
'내가 선임이고 선임이 TV본다는데 무슨 소리하고 있는거냐. 넌 집에서 아버지랑 TV볼 때도 이러냐'
이런 횡포가 어딨나, 이런 폭력이 어디있나,
당신이 무슨 아버지라도 되는 사람인가, 당신이 아버지만큼 나에게 존경받을 사람이라도 되는가,
설령 그런 사람일지라도 내 정당한 권리로(선점) 보고 있던 TV를 당신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권한 따위는 없네만...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그대로 그에게 표현했다.
선임은 물론 내 말은 개가 짖는 듯 무시해버렸다.
이 상황에서 나는,
이전 같았으면 기를 쓰고 바득바득 반박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를 정신적이든 아니면 합법적인 교정장치이든(마음의 편지라던지) 그를 뭉개고 눌러버리려고 기를 썼을 것이다.
실제로 이전의 몇몇 트러블은 그런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달랐다.
나는 너그러워버렸다.
-버렸다 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것이 내 본의는 아니었음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이다.
하지만 결국 너그럽게 넘어가버렸다. 이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넘겨버렸다.
지금까지의 나는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없었다. 나의 자아와 자존심은 내 권리의 침해나 나의 의견의 묵살은 용납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여유없는 자아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다니, 정말 엄청나게 신기했다.
그래, 어쨋든 너그럽게 넘겼다.
그리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결국 영화를 마저 볼 수 없었고 선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되었다.
결국 난 손해를 본 걸까?
아직은, 나의 가치관에서 아직은, 이 사건의 결과는 내가 너그럽게 물러남으로 내가 무슨 이득을 얻고 손해를 얼마나 보았는지에 대해서 결정한다고 치면 손해 쪽에 가깝다.
그래도 일이 더 커지지 않았음에 대해서 나 자신이 기특하다고 느끼게 된 점은 나 자신에게 숨길 수 없었고 은근히 그것에 뿌듯했다. 그래 결국은 잘 된거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寬''
아버지가 지어주신 건지 누가 지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름 그대로,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고 지어주신 걸게다.
너그러움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던 나에게 이름으로써 내 곁에 항상 있던 너그러움의 가치는 오늘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하나 보다.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보고 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다른 사람들을 품에 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겠지?
진정 나를 사랑하는 나라면 너그러움을 깨닫는 과정에서의 손해나 고통은 이겨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힘내라 愚寬
PS: 우관의 '우'는 어리석을 우 이다. 어리석게 너그럽다...그래 아예 너그러울려면 어리석을 정도로 너그러워야 한다. 따질 꺼 따지고 하는 식의 계산적인 너그러움은 진정한 의미의 寬이 아닐 것이다.
# by | 2009/08/09 19:41 | 생각 | 트랙백 | 덧글(3)



